필자가 디자인기호학을 연구한지도 벌써 20년이 훨씬 넘었다. 이 20년동안 강산이 두 번 변하고 IT산업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했지만 경제는 갈수록 어렵고 불안의식도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현상은 디자인이나 기호학계 역시 별다를 게 전혀 없다. 세계는 지금 기호학을 접목한 디자인이 경제불황의 적신호를 청신호로 바꿔줄 블루오션으로 생각하고 엄청난 인력 물적 투자를 아끼지 않는데 우리나라만은 유달리 그런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다.

 엊그제 모일간 신문에 게재된 세계적 디자인평론가 스티븐 헬러의 인터뷰기사에서 필자는 역시 대가답게 우리나라 디자인계의 한계를 잘 지적하고 있음에 놀란바 있었다. 그 양반의 논지는 간단하다.

디자이너는 기업가 정신이 있어야한다는 것과 디자이너는 그림을 잘그리는 사람보다 창의적인 사람이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론경시를 비롯해서 미술대학에서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암만생각해도 구제불능의 디자인후진국을 면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요즘 공공디자인붐을 조성하면서 서울특별시공화국과 지방지자체공화국이 야단법석을 떨고는 있지만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미술대학 출신 교수나 디자이너가 높은 감투를 다 차고 있으면서 진두지휘를 해보았자 자신들 캐리어부풀리기나 용돈좀 더 얻어쓰는 것외에 대한민국이 선진화하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같다.

산업현장에서는 디자이너가 절실히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디자이너는 단순히 기술팀 마케팅팀이 제안한 스타일이나 끄적거리고 있으니 경제불황일수록 제일먼저 목을 날려버리는 것이 디자인직이다. 스티븐헬러가 말하길 경제불황일수록 산업디자이너가 요구되고 수요인력도 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만은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디자인기호학, 기호학은 이제 창궐이 아니라 이미 알타미라동굴벽화에서부터 시작했다. 원시인 디자이너는 원시인 고객의 주문에 따라 동굴벽화를 그려왔다. 동굴벽화는 단순히 그림이 아니라  생명의 이미지로서 고객의 절실한 심정(주술에 의한 사냥)을 그대로 투사하여 애니미즘사상을 창궐해 낸 것이다.

기호학은 제품을 또는 상품을 고객의 희망사항에 맞추어 목표사양을 만들 수 있는 방법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학문이다. 목표사양이 기술적 목표사양과 사용목표사양이 있다면 기호학은 사용목표사양을 제대로 작성하게 해주는 핵심기술인 것이다.

오늘날 모든 제품 또는 상품이 기술이나 성능이 보편화되고 일반화된 상황에서 디자인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만 유달리 디자인을 아름다움과 멋에 국한되고 때로는 기술팀에 예속되어 기계장치의 포장 및 외관의 스타일리스트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디자이너는 이제 기능 기술 미학 등의 관점에서 벗어나 사용자를 편안하고 즐겁게 사용의 편리성 정보성 유머를 제공하는 세미오틱 디자이너의 상을 견지해야한다. 기획자로서의 디자이너는 더 이상 경영학 마케팅 주변학문 조금 접했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발로 뛰는, 즉 현장을 누비면서 고객 또는 소비자의 요구사항을 목표사양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고고학자 같은 인류학자같은 디자이너가 바로 세미오틱 디자이너이다.

다행이 인류학 정신분석학 고고학 사회학 인문학 등 다양한 학문에서 좋은 인자만 추출하여 메타언어로 패기지화한 기호학(또는 기호론)이 우리 주위에는 넘쳐나고 있다. 문제는 디자인을 전혀 모르는 인문학자들이 자신의 전유물인양 어려운 용어로 남발하고 왜곡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필자가 20년 기호학과 디자인을 연구하여도 여전히 안개속에서 헤메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음기회에 디자인리서치와 사용목표사양이  무엇인지 살펴보겠다.